청년과 삶/청년

학력과잉] 껍데기 뿐인 대졸ㆍ대학원졸 무한양산 大學민국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4. 28. 14:33

학력과잉] 껍데기 뿐인 대졸ㆍ대학원졸 무한양산 大學민국

 

 

 

잔뜩 배웠지만 정작 맡는 일은 잡무
헛공부에 시간 낭비만… 취업하면 새로 교육
맹탕 대졸에 밀려 고졸은 갈 곳도 없어
▲ 일러스트 이철원
지난 3월 18일 통계청은 ‘2009년 2월 고용 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월 취업자 수는 2274만2000명. 1년 전보다 14만2000명(0.6%) 감소했다. 반면 실업자는 10만6000명(12.9%) 증가해 92만4000명이 됐다. 지난해 2월(81만9000명)은 물론 올 1월(84만8000명)보다도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실업자 1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이번 통계청 발표엔 교육 정도별 실업자와 실업률을 분석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따르면 2월 현재 대졸 이상 학력 실업자 수는 34만4000명이다. 1년 전에 비해 무려 6만6000명(24%)이 늘었다. 중졸 이하(9000명·6.9%)나 고졸(3만명·7.4%) 학력 실업자 증가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경제 불황이 ‘많이 배운 이’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가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83.6%(도시 기준, 통계청 집계)였다. 고졸(학력 인정)자 10명 중 대학에 가지 않는 이가 2명도 안 되는 것이다. 고학력자가 된 한국인은 그렇지 못했던 예전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많이 배우면 좋은 데 취직하고 잘살 수 있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할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 교육의 의미가 ‘간판 따기’나 ‘가방끈 늘리기’로 변질돼 버린 건 아닐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 워싱턴DC 히스패닉계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미국 아이들보다 1년에 평균 1개월씩 더 공부하는’ 한국 교육을 추켜세웠다고 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러나 주간조선은 이를 좀 다른 시각에서 짚었다. 한국인의 교육열이 빚는 예기치 못한 현상과 문제점을 항목별로 들여다봤고, 꼭 필요한 교육만으로도 사회 진출에 멋지게 성공한 이들을 취재했다. 대안 없이 교육에만 ‘올인’하는 이들을 향한 전문가의 조언도 함께 담았다.
 

예나 지금이나 배움은 미덕이다. 그러나 그 명제는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교육’일 때 비로소 성립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곳곳에서 ‘교육과잉’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공부하겠다는데 뭐 어때서’ 하고 접어버릴 문제는 아니다. 많이 배운 이도 힘겹고,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이는 갑절로 고달픈 악순환의 고리를 찾아 그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 시작은 현재 상황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교육과잉’을 키워드로 검색해낸 대한민국의 단면들을 취재했다.

1. 초대졸 여성 32%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배웠다”

지난 2월 24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제4회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한국교육사회학회·한국교육평가학회·한국노동경제학회 등 8개 관련 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행사였다.

한국교육고용패널은 학교교육과 노동시장 간 연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선발된 학생들을 일컫는 용어. 2004년 당시 중학교 3학년, 전문계고교(옛 실업계고교) 3학년, 일반계고교 3학년이었던 학생 각 2000명이 그 대상이다. 주최 측은 이들의 진학 및 취업경로, 취업 이후의 생활 등을 추적조사하고 매년 한 차례씩 학술대회를 열어 그 결과를 발표해왔다.

올해 대회에선 2004년 당시 고3이었고 2007년 현재 취업 중인 여성 전문대 졸업생 36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이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모두 세 가지였다. 첫째 현재 직장에서 요구하는 교육 수준이 내 수준에 비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둘째 현재 직장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능력이 내 수준에 비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셋째 현재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전공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등이었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응답자 중 32.3%는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배웠다(교육과잉)’, 31.2%는 ‘하는 일에 비해 내 능력이 뛰어나다(숙련과잉)’고 답했다. ‘하는 일이 내 전공과 맞지 않는다(전공불일치)’고 말한 응답자도 34.8%나 됐다. 논문을 작성한 노일경·임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원은 “학계에서 보고되는 일반적 청년층의 교육과잉 비율이 20~28% 정도인데 이번 분석에선 훨씬 높게 조사됐다”며 “과거 고졸 여성이 맡았던 업무 성격이 거의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일을 전문대 졸업 여성이 대체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학력과잉] 껍데기 뿐인 대졸ㆍ대학원졸 무한양산 大學민국
잔뜩 배웠지만 정작 맡는 일은 잡무
헛공부에 시간 낭비만… 취업하면 새로 교육
맹탕 대졸에 밀려 고졸은 갈 곳도 없어
2. 경총 “신입 재교육에 20개월 6088만원 든다”

지난 3월 19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시범 실시한 ‘산업계 관점의 대학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3년간 자동차·금융·건설 등 7개 분야 24개 기업에 신입직원을 많이 배출한 주요 대학 3~6개를 대상으로 대학 교육과 취업 후 직무 간 연관성을 조사한 내용이었다.

이에 따르면 신입사원에 대한 기업의 직무역량 만족도는 평균 72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사원이 대학에서 현재 직무와 관련된 교육과정을 이수한 비율도 금융 50.8%, 건설 48.1%, 자동차 36.1% 등 전반적으로 낮았다.

신입사원에게 ‘출신대학 교육과정을 산업현장에 얼마나 적용할 수 있는지 점수로 매겨보라’고 한 후 집계한 평균 점수는 48점에 불과했다. 대상기업 신입사원의 47.2%가 평균 3.7개월간 참여했다고 응답한 ‘재학 중 현장실습에 대한 만족도(48점)’ 역시 높지 않았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놓은 ‘대졸 신입사원 채용 및 재교육 현황조사’ 보고서는 신입사원에 대한 기업의 만족도가 얼마나 낮은지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국 100인 이상 483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시 조사결과, 대졸 신입사원 재교육 기간(입사 후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임금에 대한 기여를 해낼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9.5개월이었다. 이 기간 중 재교육에 따르는 비용은 1인당 평균 6088만4000원에 달했다.

재교육 기간과 비용은 대졸자 비중이 큰 비제조업과 대기업에서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재교육 기간의 경우 비제조업은 23.6개월, 대기업은 27.2개월(대기업)이었으며 재교육 비용은 비제조업이 8448만9000원, 대기업이 1억147만300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많이 배운 신입사원일수록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오래 가르쳐야 써먹을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잔뜩 배웠지만 정작 맡는 일은 잡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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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탕 대졸에 밀려 고졸은 갈 곳도 없어
3. 공무원, 학력 제한 없앴지만 67%가 대졸 이상

지난 3월 23일 광주시는 2009년도 제1회 공개(제한)경쟁 임용시험 응시원서 접수 결과를 발표했다. 178명을 모집하는 이번 시험에 원서를 접수한 사람은 모두 5444명. 평균 경쟁률은 30.6 대 1이었다. 특히 지방공무원 9급 행정직의 경우 19명 모집에 무려 3245명이 몰려 170.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근 지방공무원임용시험 원서 접수를 마감한 경상북도의 상황도 비슷하다. 모두 225명을 선발하는 이번 시험에 원서를 접수한 사람은 1만3300명, 경쟁률은 사상 최고치인 59 대 1이었다. 경북도의 지난해 시험 경쟁률은 28 대 1이었다. 최고 경쟁률은 1명 모집하는 7급 행정직으로 462명이 응시해 46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78명을 뽑는 9급 행정직의 인기도 여전해 6187명이 원서를 접수, 79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공무원 임용시험은 일부 특정 분야를 제외하면 학력제한이 없다. 그러나 서류상의 지원요건과 무관하게 공무원 사회는 대졸 학력 이상의 고학력자들로 채워지는 추세다. 올 1월 행정안전부는 공직 내 인적자원의 변동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5년마다 실시하는 ‘2008 공무원 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08년 9월 1일 현재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 수는 94만5230명. 이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45.4%(39만7258명)는 최종학력이 대학교 졸업이었다. 대학원 졸업 이상도 21.2%(18만5965명)이었다. 반면 고졸 학력 소지자는 16.4%(14만3903명)에 그쳤다. 특히 교육공무원의 경우 97.2%가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걸로 조사됐다.

전문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공무원은 80.6%였다. 우리나라 인구의 학력구성비(25세 이상, 2005년 기준, 인구주택총조사) 중 전문대졸 이상 학력 소지자 비율(31.4%)보다 약 2.6배 높다.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과 후의 최종학력을 비교한 결과 대졸 이상은 59.5%에서 66.6%로, 대학원 졸업 이상은 9.5%에서 21.2%로 각각 상승했다. 상당수의 공무원이 임용된 이후에도 대학(원) 진학 등 ‘학력 세탁’을 통해 최종학력을 높여온 것이다.

 

 

잔뜩 배웠지만 정작 맡는 일은 잡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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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탕 대졸에 밀려 고졸은 갈 곳도 없어
4. 고용정보원 “고졸 백수 급증… 실업률도 평균 웃돌아”

 최근 취업난은 ‘멀쩡하게 대학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구직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고졸·전문대졸 학력을 가진 이들은 취업난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을 때부터 꾸준히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구직 사이트 워크넷(www.work.go.kr)엔 각종 취업 관련 통계들이 올라와 있다. 이 중 한국고용정보원에 구직을 요청한 후 실제 취업이 성사되는 사례를 집계한 취업 알선 통계 추이를 구직자의 최종 학력별로 살펴봤다.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국고용정보원에 도움을 요청한 고졸 학력자는 ‘18만9555명→21만2002명→25만3377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 취업이 성사된 경우는 ‘2만1304건→1만8534건→1만9613건’으로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줄었다. 같은 기간 전문대졸 구직자 수(8만1444명→10만2819명)와 대졸 구직자 수(8만7200명→11만1796명) 역시 늘긴 했지만 고졸 구직자 수의 증가세엔 미치지 못했다. 특히 최근 상황과 별개로 총계 부문에선 전문대졸과 대졸 구직자 합계가 고졸 구직자 수보다 적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연간 실업률 조사에서도 고졸 학력자는 대졸 이상 학력자에 크게 뒤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5년간 고졸 학력자의 실업률은 적게는 3.8%, 많게는 4.6%였다. 같은 기간 대졸자의 실업률은 3.0~3.5%였다. 양자 간 격차는 늘 0.6~1%포인트 정도를 유지해왔다. 불황으로 인한 취업난이 크게 부각됐던 지난 1월의 경우 격차는 5년 만에 최고치인 1.4%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고졸자와 대졸자의 취업난이 동시에 가중되는 문제의 최대 원인이 지난 몇 년간 고용시장에 전격 도입, 시행돼온 학력제한 철폐 조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98개 공공기관에 지방대 출신 우대와 연령·학력제한 철폐 등을 뼈대로 하는 ‘열린 채용’을 권고한 바 있다. 그는 이 제도에 대해 “학력에 관계없이 개인의 잠재성을 평가하겠다던 당초 취지와 달리 고졸자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대졸자의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선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고졸자에 대한 쿼터제를 시행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